성명·보도

성명 및 논평56년만의 미투, 성폭력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재항고 입장문

 

한국여성의전화 KOREA WOMEN'S HOT-LINE
56년만의 미투,
성폭력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재항고 입장문
 
 
나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다. 
대한민국 전부가 잘못 되었다고 하는 걸 
왜 사법부만 모르고 변하지 않는 건가. 
이제 남은 건 당시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 
후손들에게 이런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정당방위를 인정한 판결이 나올 때까지, 그
래서 이 사회가 변화될 수 있도록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
 
56년을 가로지른 연대, 최말자 님과의 대담 중 -
 
 1964년 5월 6일, 피해자 최말자 님은 자신에게 강간을 시도한 남성의 혀를 깨물어 상황을 모면했습니다. 그러나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성폭력 피해자의 행위를 정당방위가 아닌, 고의에 의한 상해로 판단했습니다. 피해자는 중상해죄로 6개월여간 구속된 채 수사·재판을 받았고, 징역10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미투 운동을 지켜본 최말자 님은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여성들이 겪는 현실이 다르지 않음에 분노하였고, 본 사건의 해결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56년 만에 정당방위 인정을 위해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2021년 2월 18일, 부산지방법원 제5형사부는 본 사건이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라는 변명과 함께 재심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피해자는 즉시 항고하였으나 2021년 9월 6일 재판부는 다시 항고 기각결정을 내렸습니다. 
 
 56년 전 최말자 님이 겪은 부정의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단지 성폭력에 대응하고자 했던 피해자는 판결문에 여전히 중상해 '가해자'로 남아있습니다. 2021년의 우리는 56년을 가로질러 1964년의 최말자 님이 정당한 재판을 다시 받을 권리를 되찾고 정당방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말자 님과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9월 6일 부산고등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청구의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를 기각하였. 해당 사건은 1964년 5월 6일 당시 18세였던 청구인이 성폭행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판단하지 않고 '고의에 의한 상해'로 보아 구속 수사하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사건이다. 반면 성폭행을 시도했던 가해자는 특수주거침입죄와 협박죄만 인정받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청구인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한국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했고, 56년 만인 작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청구 이후 한국여성의전화는 기자회견, 청구인 심문 지원의견서 및 탄원서 등을 재판부에 제출하여 재심 개시를 강력히 촉구하였다또한국민 청원 및 3차에 걸친 서명운동에 2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며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올해 2월 17일 부산지방법원은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이며 ‘사회문화적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여 사건을 뒤집을 수 없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하였다. 변호인단은 즉시 항고하였고, 부산고등법원은 지난 9월 6일 재심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를 또다시 기각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들이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며, 공소에 관여한 검사의 불법체포감금죄 등에 대해해서는 불법구금 등을 증명할 객관적이고 분명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은 점, 재심대상판결에 관여한 법관의 소송지휘권 행사는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법률적 환경 하에서 범죄의 성립 여부와 피해자의 정당방위 등 주장에 대한 판단을 위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검사와 법관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이번 항고 기각결정문은 지난 재심 기각결정문을 그대로 복사한 듯 똑같다. 항고심 재판부가 사건을 제대로 심리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본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여성의전화는 재판부의 항고 기각결정에 대해 분노하며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이는 재심 개시를 위해 서명에 참여한 2만여 명의 시민들의 분노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중략)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하여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천명하고 있다. 청구인은 1965년 사건 당시부터 정당방위를 주장하였으며, 56년이 지난 후에도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잘못을 지적하며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자 재심을 청구하였다. 재판부는 같은 내용의 결정문을 반복할 게 아니라 56년 전 국가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재심 청구를 인용했어야 했다. 
 
 재심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를 기각한 부산고등법원의 선고가 있은 후 변호인단은 바로 재항고장을 제출했으며, 한국여성의전화와 청구인변호인단은 재항고를 통해 청구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대응해나갈 것이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고 여성의 방어권이 인정될 때까지 한국여성의전화는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이들과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56년을 가로지른 연대, 최말자 님과의 대담> 2021.08.13

 

 

 
 지난 8월 13일 재심 청구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한국여성의전화는 '56년을 가로지른 연대, 최말자 님과의 대담'을 진행했다. 본 행사는 당사자와 사건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성폭력 정당방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대담에서 최말자 님은 "57년 전 18살 때에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뒤바뀐 당시의 상황이 억울하기만 하고 맞서 싸울 힘이 없었지만, 60살이 넘어 공부를 시작하고 힘이 되어주는 지지자와 단체, 변호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 줘서 재심 청구까지 할 수 있었다.”라며 “나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다. 대한민국 전부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걸 왜 사법부만 모르고 변하지 않는 건가. 이제 남은 건 당시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 후손들에게 이런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정당방위를 인정한 판결이 나올 때까지, 그래서 이 사회가 변화될 수 있도록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라고 하였다.
 
  참여자들은 '56년이 넘더라도 억울함을 풀어내는 게 앞으로 살아갈 여성들의 삶을 바꾸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힘내서 재심 청구 승리해 주세요.', '수많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최말자 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재심을 청구하고 지금 이 시대 여성의 현실에 공감하고 분노해 주시는 것이, 그리고 최말자 님의 삶이 같은 여성인 저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다시 용기를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연대의 메시지를 남겼다.
 
부산고등법원은 재심 청구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를 또다시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와 변호인단은 재항고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싸움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재심 개시를 위해 연대와 응원을 담은 서명과 재판부에 전하는 한마디를 남겨주세요.
 
한국여성의전화는 폭력 없는 세상,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1983년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으로부터 여성인권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합니다.